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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 한 줄

2014년, 마흔 두 살이 시작되었다. 생일로 치자면 마흔 둘이 아니겠으나 여긴 한국이니까 그렇게 새겨놓고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깜빡깜빡한다던 친구는 우리 나이가 벌써 마흔 둘이었냐고 어이없어하며 한참을 웃었다. 그렇게 제 나이를 뜨악 하는 친구를 보며 나도 같이 웃어 제꼈다. 마흔하고도 하나였는지, 둘을 지났는지, 셋은 아니겠지 싶었단다. 뭐 나이가 중요한건 아니라며 응수를 해 주긴 했으나 친구는 별반 귀에 들리지 않았는지 연신 어이없어 하는 웃음이 삐져나온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오고가는 길목마다 일상이니까 별반 다른 것이 없었기에 내 모습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을 알아채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조목조목 살아가는 순간들을 살펴봐야 했다. 그래도 쉬이 찾기가 쉬지가 않다. 물론 처음부터 떠오른 장면이 하나 있기는 했다. 언제부턴가 계속 남아있는 이미지처럼 나를 괴롭히던 장면이다. 그것도 매일같이 떠오르는 장면이요, 아쉬움을 달래야만 했던 순간이었기에 좀체 풀리지지 않던 매듭과도 같았다.
등산바지를 입고, 등산용 웃옷에 점퍼, 그리고 의당 등산화를 찾아 신을 때마다 ‘아, 또~’ 하는 종이 울리는 것 같았다. 배송일을 시작하면서 시작된 버릇같은 종소리다. 일을 나설 때면 어김없이 스스로를 되짚게 된다. 이 옷차림이 낯설다.
내게 옷에 관하여 지적질을 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딱히 더럽게 입고 다니지는 않았으니 그랬으리라. 아니 그만큼 친했던 주위사람이 적었던 탓이리라 짐작해 본다. 그런데 유독 지적질을 하는 사람이 둘 있었는데, 당연히 엄마와 동생이었다. 식구인 게다. 엄마야 그렇다고 치자. 동생이란 놈은 늘 멋이 안 난다고 투덜이다. 내가 지 몸둥아리도 아닌데 우째 그러냐고 따졌었던 적이 있다. 돌아오는 답이 내 말문을 막았다.
“내가 좋아하는 형이 멋져 보였으면 좋겠어.”
지금은 공부 좀 했다는 구실로 더듬어보면 동생의 말이 이해가 된다. 다섯 살에 아버지를 여였으니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고작 형밖에 없었던 동생으로선 자기 존엄에 대한 기대와 한계를 느꼈을 것임을, 세상을 인식하는 틀이 시각적인 멋으로 가늠하는 동생이기에 형이 하고 다니는 행색이라는 것에 지적질을 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정도로 짚어놓는다. 그래서 난 동생이 돈을 벌고, 지 돈으로 사다놓은 옷들을 야금야금 집어 입기 시작했고, 걸렸다 싶으면 니 탓이다 싶을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며 ‘구질구질하게 입지 말라며…’ 면박을 놓기도 했다.
뭐, 부모님께 감사할 일이겠지만 태어나길 옷걸이가 좋게 태어났나보다 싶을 정도로 다른 옷은 몰라도 정장만큼은 참 잘 어울린다는 소리를 많이도 들었다.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말이어서 그런건지, 남자가 정장만큼 신경 덜 쓰고, 별 탈 없이 입을 수 있는 옷이 또 있으랴 싶은 심정이어서 그런건지 정장이 편했다. 물론 정장차림을 하는 데 손이 많이 가기도 하지만 간편하기도 이만하기 더없이 좋은 것이 사실이다. 한 번 구색을 맞춰놓으면 그대로 하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그렇게 동생의 옷걸이에서 하나둘 꺼내 입었던 정장이 한두 벌이 아니다. 참 많이도 꺼내 입었지만 유독 건들지도 않았던 옷이 있었다. 소위 말하는 아웃도어룩이다. 등산용이나 운동용 차림의 옷들은 손도 대지 않았다. 동생이야 지가 어릴 적에 운동선수였으니, 활동을 좋아하니, 이상하게도 이 녀석은 아웃도어룩도 참 잘 어울렸다. 그런데 난 여차저차한 생각에 운동복을 입고 나다니는 게 유독 싫었다. 등산복이 일상 바깥차림으로 당연시 되던 시절을 맞았어도 난 절대로 하지 않았다. 동생이 죽기 전까지….
처음 등산 자켓을 사면서 울음을 삭혔다. 니 생각이 날 때만 입을게 하는 인사말을 속으로 건네며 샀다. 그렇게 한 벌, 두 벌 늘어나던 것이 배송일을 시작하면서는 일부러 몇벌 사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일을 나서는 매일같이 챙겨 입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종소리를 듣는 듯이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런 낯설음 쯤은 잔잔한 물에 던져진 돌멩이 쯤으로 친다. 그러니 파장이 일렁이는 것조차 얼른 가라앉혀 놓는다.
그렇게 이 배송업계에 적응을 한 듯싶다. 잠은 충분히 잘 것, 물건을 들을 땐 반드시 허리를 굽히지 말 것, 과속은 하지 말 것, 적정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기름값을 아끼는 진리라는 것까지, 그리고 끼니는 거르지 말 것. 매일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 똑깥은 시간에 출발하는 것이 지겨울 것 같아도 그런대로 몸이 제일 편하게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사람 사는 일이 똑같이 반복될 수는 없는 터, 늦게 일어나 점심이 한참이나 지난 시각에 끼니를 만나니 배가 너무 부르게 먹어댔다. 그러니 저녁을 건너서 출근을 했다. 시간에 쫓기는 일이 생기기에 매장에서도 끼니를 해결하지 못했다. 다른 매장에서 먹기로 했는데, 정작 가서는 입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딱 10분만 기다리면 같이 먹을 수 있는 시간인데, 기다리기도 뭐하고 말하기가 영 계면쩍어서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그러면 다음에 가는 매장에서 만두를 쪄달라고 해서 먹어야지 싶었지만, 이 역시 입을 열지 못했다. 기껏한다는 인사가 ‘갑니다’였다.
한참을 달리다보니 어느새 배가 고파왔다. 조금만 더 가면 편의점이 있는데, 거기서 컵라면이라도 먹어야겠다는 심정으로 달리고 있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김밥집 간판 하나에 불이 켜져 있었다. 24시간 영업이란다. 긴 연휴가 지난 첫날인데, 영업을 하는 건가 싶어 이리저리 살피며 지나서는 정차를 했다. 김밥 하나 물고 달린다.
김밥을 먹으며 달리다 보니 언젠가 봤던 김밥 한 줄 손에 쥐고 운전하던 트럭기사, 4.5톤 트럭을 운전하는 사람이 고작 김밥이라니 했던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이런 내 모습이 뭐지 싶다. 순간적으로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것보다 김밥 한 줄, 천오백원으로 해결하는 것이 더 싸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라면보다는 밥이 낫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얼마간의 한 달 용돈 정도는 있을 법도 한 주머니 사정인데도 이렇게 김밥 한 줄, 두 줄도 아니고 한 줄을 사들고, 그것도 운전하면서 맛만 좋다고 씹어대는 모양이라니….
양복을 입고 혼자라도 식당에 자리를 잡고 끼니를 챙겼던 지난 시절이 낯설다. 동생을 기억하는 마음이 아련한 것처럼 나를 위하는 마음이 애잔하다. 난 오늘도 등산복을 입고 출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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